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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유정 개인전, "어디에나, 어디에도"
Min Yu Jeong "Everywhere, Nowhere"
NOV 2, 2012 - NOV 11, 2012

민유정 "어디에나, 어디에도"

풍경에 숨은 예사롭지 않은 순간에 대한 이미지의 기억

글/박경린

깊은 밤. 꺼지지 않을 것 같았던 도시의 불빛도 모두 사라진 깊고 깊은 밤 어둠을 가르며 하얀 섬광의 불꽃들이 하늘을 수놓는다. 민유정의 <그날 밤의 불꽃 #1>(2012)이다. 작은 화면에서 만들어낸 이미지는 마치 별똥별이 지는 듯 아름답기만 한데 사실은 이 어둠이 전쟁의 포화를 기다리는 불길한 순간을 감추고 있었다. 민유정의 작업은 이렇듯 전쟁, 사고, 추락과 같은 인재(人災)나 지진, 홍수, 쓰나미 등과 같은 자연재해의 현장들을 담은 사진 이미지를 주된 소재로 담아 캔버스에 담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모든 이미지는 필연적으로 지시적(referential)이거나 허상된 것, 다시 말해 시뮬라크르적인(simulacral)것이 되는 속성을 갖는다. 그러나 민유정의 회화에서는 이미지가 갖는 이 둘의 속성을 동시에 부정하거나 혹은 동시에 모두 가지며 지시적이면서 그 지시성을 말소한다. 한편으로는 이미지가 갖는 허상적인 속성을 드러내면서 동시에 ‘실제로 있었던 일’이 가지는 진실성을 담보하며 이미지를 통해 불러일으키는 감정의 여러 층위들을 증폭시킨다.
그 첫 번째 단계로 작업을 시작하는 단계에서 신문이나 인터넷 등을 통해 전달되는 ‘사건’들을 수집하고 분류한다. 이때 함께 전달되는 대부분의 이미지들은 인재나 자연재해 등이 발생하기 직전이나 혹은 이미 끔찍한 순간이(누군가에게는 기억하기 싫은 끔찍한 순간, 보는 감상자에게는 그저 매일 검색하는 인터넷 기사의 한 부분에 불과한) 지나가고 난 뒤의 순간들이다. 그중에서도 작가를 잡아끄는 몇몇 이미지들을 채집하여 몇 날, 몇 시 등 시간의 정보나 사건의 정보들은 삭제한 채 작가의 시선으로 가공하여 전달한다. 따라서 특정한 사건에 대한 지시성은 사라지고, 그 안에 담긴 내러티브 또한 상실된 채 순수하게 이미지가 불러일으키는 감정 그 자체에 주목하게 된다. 이러한 감정은 이미지가 갖는 본래의 이야기가 무엇이든지 간에 지나가는 이미지 속에서 붙잡은 이율배반적인 순간들을(심지어는 아름답다고 느껴지기까지 하는) 끄집어낸다.
이러한 감정의 첫 번째 원인은 거리감이다. 예를 들어 <추락 그 후 #2>나 <벼락>(2012)와 같은 작품들 속에서 사건이 발생하는 곳(혹은 이미 했거나)은 관람자가 실제 서있는 곳, 사건을 바라보는 곳에서부터 압도적으로 멀리 있다. 이것은 물리적 거리와 시간적 거리의 속성 모두를 갖는다.
비행기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면서 찍은 것 같은 <추락 그 후 #2>나, 지평선 너머 멀리 떨어진 곳에 내리치는 번개를 보는 것 같은 <벼락> 모두 관람자로 하여금 사건이 발생한 지점에 대한 주관적인 감정의 개입을 차단시키고 물리적으로 멀리 떨어진 안전한 공간에서 사건을 바라보게 한다. 비극적인 순간의 희생양이 되지 않을 것이라는 안도는 밝은 색상이 자아내는 발랄한 분위기로 인해 확신으로 바뀐다. 그러나 거리감에서부터 온 평화로움은 작은 화면의 그림을 좀 더 유심히 보려 가까이 다가가면 다가갈수록 이미지 속에 담긴 균열 속에서 위험을 감지하게 만든다. 좁아 들어간 물리상의 거리감은 언제나 모든 재난들이 갖는 속성과 같이 급작스럽게 다가와 이것이 위험의 순간임을 깨닫게 만드는 순간 충격과 슬픔 그리고 불유쾌한 모순된 감정으로 이끈다. ‘멀리’ 떨어진 공간에서 가까이 갈수록 재난의 ‘순간’에 근접하게 되는 것이다.
재난의 풍경을 앞에 두고도 아름다움과 슬픔, 평화로움과 불길함, 진실성과 허구성을 동시에 느끼는 모순된 감정들에 대해서 앤디 워홀은 “계속해서 몇 번이고 끔찍한 그림들을 보게 되면, 그 그림은 실제로 아무런 효과도 미치지 못한다.”라고 그의 재난 연작들에 대한 설명에 덧붙인바 있다. 워홀의 토요일의 재앙이 텔레비전 시대에서 꿈처럼 보이는 삶과 시간 속에 놓인 충격의 순간들은 반복되는 이미지를 통해서 다른 의미로 재생산되는 것이 아닌 실재를 가리는 장치로서 기능한다. 실재를 가리고 거기서 오는 이미지의 본질을 가리는 동시에 그 속성을 간파하게 했다. 워홀이 불러온 토요일의 재앙이 텔레비전으로 상징되는 미디어 시대에 속한 이미지들의 소비 방식을 보여준다면, 민유정의 작업은 50여년이 지난 지금 인터넷이라는 매체를 통해서 무차별적으로 전달되는 이미지의 홍수 속에서 나고 자란 세대가 바라보는 이미지에 대한 하나의 시선이다.
한국 뿐 아니라 저 먼 인도양의 어느 섬나라에서 벌어진 사건의 참상까지 낱낱이 인터넷을 통해 공개되는 도리어 아무것도 충격을 주지 못하는 시대이다. 이미지들이 만들어내는 환영 속에서 태어나고, 자라고, 성장한 시뮬라크르 키드들은 이제 더 이상 재난과 같은 소재가 던지는 충격의 메시지에도 무심하고, 그것조차도 일상의 순간으로 받아들인다. 그 속에서 회화라는 가장 미디어 이미지가 갖는 속성과 반대되는 원본성을 획득한 매체를 통해 이미지를 소화해내는 것은 모순적이면서 동시에 허상이 진실한 것으로, 혹은 허상만이 존재하는 세계에서 자고 나란 시대의 투영일지도 모른다.
지금 내 앞의 길이 놓인 끝에 어둠 속에 유일하게 노란 빛을 발하는 어느 집의 조명은 하늘 가득 낮게 낀 검은 구름의 무게 앞에 곧 압도당할 것 같다. 그 빛은 희망적이지도 절망적이지도 않다. 곧 발생할 재난 앞에서 철저히 혼자 그 시간을 감당하고 있을 뿐이다. 그 빛이 주는 고요한 아름다움은 정적이 가져다주는 서슬 퍼런 순간으로 조금씩 인도한다. 그 모든 것으로부터 우리는 멀리 떨어져 있고, 또 가장 가까이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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